<div id="pi__32496278_3483273" class="pi__32496278_3483273"><span style="font-family:Arial;">프랑크푸르트 교외에서의 미팅이 없었다면, 10년 후 리버풀과의 만남은 없었을지 모른다.</span></div><div><br id="pi__32496278_3483273" class="pi__32496278_3483273"></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당시 클롭은 블랙 포레스트 출신의 감독이었고 38세였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감독은 아니었다. 반면 마르크 코시케는 브레멘에서 태어났고 나이키의 옛 독일 본사에서 일하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2005년까지 약 4년 동안 마인츠를 맡았고, 이 때문에 클럽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개인 후원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코시케는 나이키에 오랫동안 몸담았고, 클롭이 터치라인을 배회할 때 나이키의 신발을 신을만한 인물인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마인츠는 차로 40분 거리에 있었고, 클롭은 친구이자 항상 계약시 동행했던 변호사와 함께 나타났다. 클롭은 자신이 에이전트를 둘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서 에이전트가 없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책상은 서로 떨어져 있었고, 코시케는 가죽의자에 몸을 기대고 두 팔을 머리에 얹은 채 있었다. 클롭은 청바지와 후드티를 입고 왔는데, 축구 감독처럼 보이진 않았다. 마인츠는 분데스리가 클럽이었고, 2004-05시즌 11위로 리그를 마쳤지만 페어플레이 기록으로 UEFA컵 출전권을 얻은 상태였다. 코시케가 바라보는 클롭은 커다란 손동작과 유려한 말솜씨를 자랑함에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span></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3772923a2ad5fe43a6999b4a2027493f.jpg" alt="그림1.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3703"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다음 미팅 일정이 잡혔다. 이번에는 교외의 술집이었다. 코시케는 클롭이 마음에 들었지만 좀 더 알고 싶은 점이 있었다. 클롭은 밀맥주를 주문했고, 코시케도 밀맥주를 주문했다. 오후가 저녁으로 바뀌었고, 밀맥주는 계속 나왔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이 화장실을 다녀왔고, 코시케는 클롭이 들어가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전 돈은 신경쓰지 않아요." 클롭이 얘기했다. "하지만 내 변호사 친구는..." 클롭은 이렇게 설명했다. 녹슨 바지선을 사서 다시 가치가 있는 배로 만드는 과정에 있다고. 그 과정에 필요한 돈이 약 €12K (현재 기준 1,600만원) 라고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거래하죠. 그럼 제 친구가 배를 가질 수 있어요." 클롭이 제안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코시케는 웃으면서 좋은 생각인거 같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코시케는 클롭과 함께 했다. 코시케는 여태까지 나이키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여러 고객들과 클롭은 달랐다고 생각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2015년 가을, 클롭과 코시케는 뮌헨 공항에 있는 루프트한자 라운지에서 쉬고 있었다.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나름 가렸지만, 한 승무원이 클롭을 알아봤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왜 클롭은 뉴욕행 비행기를 탔을까?'</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프랑크푸르트에서 클롭과 코시케가 처음 만난 이후, 10년이 지났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2006년 무렵, 클롭의 업무는 늘어나기 시작했고 루틴한 업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마인츠는 세간의 예상보다 더 잘하고 있었고, 그 해 여름 독일 월드컵에서 TV 해설가로 참가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떨쳤다. 코시케는 클롭이 주저하지 않고 전술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클롭은 성격 덕분에 사람들에게 핵심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당시 코시케는 나이키를 떠나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선수들의 에이전트를 생각했다. 그러다 한 행사장에서 클롭을 만났고, 클롭은 단도직입적으로 코시케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제 에이전트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첫번째 빅 딜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였다. 독일에서 두번째로 큰 클럽이었던 도르트문트를 맡아 리그 우승 2회, 독일 컵 우승 1회, 독일 슈퍼컵 우승 1회 등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도 이끌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b24e993a9d4782231d54cbf92f8f0370.jpg" alt="그림2.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3899"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2015년 여름, 클롭은 공식적으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도르트문트에서 성공적인 7시즌을 보내고 난 뒤였다. 하지만 코시케는 계속 일하고 있었다. 감독직으로 돌아올 때를 준비했다. 클롭이 어떤 지침을 내려주지는 않았지만, 코시케는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몰두했다. 전화를 걸고, 받았으며 신뢰할 수 있는 통로를 통해 클롭이 맡을 수도 있는 클럽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후보 중 하나는 첼시였다. 다른 하나는 리버풀이었다. 코시케는 구단주와 보드진의 구조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마이클 에드워즈가 정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에드워즈는 공식적으로 디렉터 직함을 달진 않았다. 하지만 코시케는 에드워즈가 직함만 없을 뿐, 디렉터의 업무를 모두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안 에어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다. 코시케는 리버풀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클롭에게 첫번째로 연락이 올거라고 예상했다. 코시케가 에어에 대해서 수집한 정보는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았다. CEO로 재임하는 동안 진행했던 대부분의 영입/거래 등이 성공적이지 않았다. 여튼 에어가 정말 어땠다는거지?</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코시케에게 전달된 모든 정보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코시케와 클롭은 스스로 판단하길 원했다. 특히 리버풀의 실패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클롭을 위한 면접 자리였지만, 클롭과 코시케가 자신을 고용할 사람들을 판단하는 면접 자리이기도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 날의 또 다른 전략은 미팅 장소가 맨하탄이었다는 것이다. 뮌헨 공항에서 한 승무원이 클롭을 알아봤을 때, 클롭은 농구 경기를 보러 뉴욕에 간다고 했다. 하지만 NBA 개막은 한 달도 더 남은 상태였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펜웨이 스포츠 그룹 (이하 FSG)의 마이크 고든이 미팅 장소로 보스턴과 거리가 있는 곳을 추천한 것은 행운이었다. 고든은 클롭이 보스턴에서 발견될 경우, 그 이유가 너무나도 명확해지기 때문에 다른 장소를 추천했다. 코시케는 고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진 못했다. 2015년까지 고든은 보스턴 외곽의 브룩라인에 머물면서 리버풀의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과 고든은 슈투트가르트 근처의 글라텐과 미네소타에서 각각 어린 시절을 보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둘 다 오픈 마인드라는 사실은 금방 알아차렸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클롭의 성격이 강하다는 선입견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이는 클롭이 항상 다른 사람의 말을 먼저 듣고 나서 자기 얘기를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고든은 173cm, 클롭은 거의 193cm였다. 고든은 조용하게 얘기하고 스스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하지만 클롭은 정반대였다. 고든은 클롭에게 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클롭은 리버풀에게 감명 받았다고 얘기했지만, 구단주들을 앞에 두고 리버풀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할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그동안 리버풀에 너무 많은 부상자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감독이 된다면, 이 점을 가장 먼저 바꿀 것이라고 했다. 미팅이 끝나갈 무렵, 고든은 존 헨리에게 클롭은 어떤 기업에 가서도 CEO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했다. 축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클롭은 대서양 반대편에서 FSG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카를로 안첼로티는 클롭보다 하루 앞서서 로펌 '쉬어맨 & 스털링'을 방문했다. 고든은 안첼로티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리버풀에 더 필요한 감독은 클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3년 전만 하더라도 FSG는 브랜던 로저스에게 감독직을 맡기기 위해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클롭은 달랐다. 클롭의 열정은 로저스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지난했던 논쟁이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코시케가 계약 조건을 합의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클롭은 코시케가 세부 계약사항을 조율할 때 즈음, 미팅 장소를 떠나 센트럴 파크로 갔다. 스트로베리 필드를 가로질러 존 레논이 살았던 다코타 빌딩을 향해 걸어갔다. 리버풀로 간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65e4a2a5221b722ef7f7f752f89c89bc.jpg" alt="그림3.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055"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리버풀 아카데미 식당에는 커피머신이 있었다. 그리고 클롭은 커크비 지역에서 보내는 첫번째 오후를 아카데미에서 머물렀다. 쌀쌀한 10월이었고 훈련장에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알렉스 잉글소프를 비롯해 아카데미 코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을 찍은 후, 클롭은 직접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에스프레소와 담배는 클롭이 일상적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방법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사람들은 클롭이 커피 머신을 조작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뭔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클롭이 얘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새로운 커피머신이 있어야 겠네요!" 이제는 익숙하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던 웃음을 보이면서 클롭이 얘기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아카데미를 정기적으로 찾지 않는다. 클롭은 그 날 아카데미에 있는 사람들이 잘하고 있다는 말로 모두를 안심시켰다. 클롭은 도르트문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카데미에 있는 선수 중 몇몇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잉글소프에게 아카데미 운영의 전권을 주겠다고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다음 번 아카데미를 방문했을 때, 클롭은 기뻐했다. 새로운 커피머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제 얘기를 듣고 있었네요!" 몇 달 후, 클롭은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가 1군 훈련장인 멜우드에서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음에도 말이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예전에 클롭은 독일의 오펠 공장에서 만 여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클롭의 강연은 거의 콘서트에 가까웠고, 강연이 끝나갈 무렵에는 청중들이 클롭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클롭은 첫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모든 관계의 기본이라고 보고 있다. 멜우드의 회의실에서 첫번째 선수단 미팅을 했을 때, 클롭은 화이트보드에 대문자로 'TERRIBLE'이라고 썼다. 클롭은 안필드에서 리버풀을 상대한 팀들이 느껴야 하는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그 감정은 내가 공을 빼앗겼을 때, 더 멀리 뛰고 더 빠르게 상대를 압박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거기서부터 리버풀의 역습이 시작되는 것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리고 클롭은 모든 스태프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했다. 선수단 앞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얘기하라고도 했다. 이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진행됐다. 선수들은 훈련장에 일하는 모든 직원들의 이름을 알아야 했다. 클롭은 성공을 위해서는 협업이 필요하고, 협업을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선수단의 재능에 대해 칭찬했지만, 리버풀의 감독으로 결정된 이후 지난 1년간의 모든 리버풀 경기를 시청했다. 그리고 클롭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감의 결여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휴식시간을 줄이기로 결정했고, 불과 하루만에 훈련 강도는 더 높아졌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감독 초기에 클롭은 리버풀의 트레이닝복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원단이 땀을 잘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클롭은 선수들이 연습도 실전처럼 생각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트레이닝복이 문제가 됐던 것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4부리그 팀이었던 칼라일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컵 홈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페널티킥까지 가야했던 상황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훈련장에서는 베테랑들끼리 얘기했고 상황은 계속 반복되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당분간은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리버풀이 나아졌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전년도 우승팀인 첼시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2014-15시즌 2위를 차지한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제서야 클롭의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6eeb0aa49720053655f6d2f2735435de.jpg" alt="그림4.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159"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기다려준다거나 방법을 바꾸는 것은 없었다. 클롭은 선수들을 편안하게 내버려두거나 기존 코치들이 혼자서 훈련 세션을 진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클롭은 한발짝 뒤에서 지켜보고 판단을 내렸다. 대신 시작부터 호불호는 명확했다. 첫 경기였던 토튼햄과의 원정경기에서부터 잘 알 수 있었는데, 이 경기에서 아담 랄라나는 미드필드전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클롭은 훈련장에서 랄라나가 보여준 포지셔닝에 대한 이해와 활동량에 매료되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초기에 클롭의 눈에 띄었던 다른 선수가 있다면, 바로 다니엘 스터리지였다. 클롭은 리버풀 선수단이 재능있는 선수들로 구성됐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스터리지는 생각보다 더 좋은 선수라고 했다. 도르트문트 시절 지도했던 레반도프스키와 마리오 괴체를 합치면 스터리지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클롭은 스터리지가 부상이 없었을 때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는데, 그랬다면 유럽 최고 9번은 스터리지의 자리라고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코치들은 1일차 아침부터 멜우드 훈련장을 세 구역으로 나눠서 압박 훈련을 준비했다. 이것은 클롭이 이뤄낸 모든 것들의 기본이지만, 당시 선수들은 몇몇 훈련이 생소한 것이었다고 했다. 선수들은 서로 같은 거리에 마네킹을 놓았고, 각각의 마네킹은 압박의 강도를 나타내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거의 모든 경기를 앞두고 클롭은 "압박 피해자"를 선정했다. 대개 공을 투박하게 다루는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타겟이 됐다. 클롭의 목표는 리버풀 선수들이 압박해서 공을 빼앗기 전에 "압박 피해자"에게 공이 가도록 하는 것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선수단에게 "공을 빼앗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은 소유권을 잃은 직후다"라고 얘기했다. "상대방은 공을 패스할 곳을 찾고 있을 것이고 압박을 가하면 태클을 피하거나 공을 지키기 위해 급급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체력 소모가 일어난다"고 덧붙였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초창기 클롭은 정기적으로 훈련을 중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선수단에게 직접 이야기 했다. 클롭은 자신의 전술이 상대팀에게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사실 그 전술은 리버풀에게도 리스크가 컸다. 클롭은 3~4명의 선수가 상대방을 압박하며 공간을 좁히라고 주문했는데, 이 때 다른 선수들이 적절한 위치로 로테이션하지 않는다면 다른 공간이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이 약점은 2015년 12월 20일 왓포드를 상대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날 리버풀은 왓포드에 0-3으로 패했다. 선수단은 그 날 밤, 폼비 홀 골프 클럽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기에서 패한 후, 선수단은 크리스마스 파티가 취소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리버풀에 도착한 이후, 클롭은 선수단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하든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고 오늘 밤은 그게 크리스마스 파티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새벽 1시까지는 아무도 집에 못 간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또 다른 밤, 리버풀은 다시 패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의 리버풀 데뷔 시즌은 바젤에서 끝났다. 유로파 리그 결승에서 전반이 끝났을 때, 리버풀은 세비야를 1-0으로 이기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에 보여준 세비야의 경기력은 리버풀을 압도했고, 세비야는 1-3 이상으로 리버풀을 이길 수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당시 리버풀의 숙소였던 노보텔 내부의 분위기는 절망적이었다. 심지어 클롭조차 이 패배로 무너졌다. 클롭은 다른 코치들과의 미팅에서 세비야가 더 강하고, 조직력이 조 ㅎ았음을 인정했다. 클롭은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했지만, 당시의 선수단 구성이 자기가 원하는 선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리버풀의 현 전력으로 유로파 리그 결승까지 온 것이 대단한 일이라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1cc77cc9b3ac149e334ad59af81a8539.jpg" alt="그림5.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287"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의 리버풀 첫번째 시즌은 출발점때문에 '성공적인 실패'로 느껴졌다. 기대 자체가 거의 없었고 클럽 전반적으로 리빌딩 작업을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리빌딩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실망스러운 결과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 리버풀의 리그 순위는 8위였는데, 이는 지난 20년간 최악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사람들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클롭이 리버풀에 왔을 때 리그 순위가 10위였기 때문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비록 클롭이 두 구단 사이의 재능의 차이로 인해 더 납득하기 쉬웠다고 해도,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컵 결승에서 페널티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한 것도 이 과정의 일부였다. 바젤에서 일어난 일은 클롭에게 안필드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의 규모를 다시 깨우쳐 주었다. 그리고 이 패배는 2016-17시즌 리버풀에 유럽 대항전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아직도 선수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선수단에게 유로파 리그가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도 리버풀이 결승에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2시간 전에, 우리 모두 최악이었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클롭은 이것이 시작이라고 했고, 다른 결승전이 있을거라고 했다. 이 감정을 기억하고 실망감을 이용해서 더 발전해야 한다고도 했다. 클롭은 선수들에게 자신의 말을 경청해줘서,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수용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그 시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리버풀 서포터들이 다시 클럽을 신뢰하길 원했다. 관중석으로부터의 열정을 이용할 수 있다면, 12번째 선수에 대한 이론이 입증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만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의 부임 후, 두번째로 열렸던 홈경기인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경기 종료 8분을 남기고 크리스탈 팰리스가 앞서나가자 팬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클롭은 그 날을 회상하며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웨스트 브롬위치와의 홈경기에서 2-2로 비겼을 때는 달라졌다. 리버풀의 동점골은 경기 막판에 터졌고, 그 때까지 관중석은 꽉 차 있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0827540ea0074bfd0f6acb6231a7b62e.jpg" alt="그림6.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377"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시즌이 끝날 무렵, 분위기는 완전히 변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유로파 리그에서 도르트문트를 4-3으로 이겨, 종합 5-4로 승리한 것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 경기 종료 25분을 남기고 있었을 때까지 리버풀은 1-3으로 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승리했고, 이는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던 안필드의 리버풀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클롭은 바젤에서 이 날 경기를 "리버풀 팬들이 내 축구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30분을 만들어냈다"고 회상했다. "우리가 함께 여기까지 왔다"고.</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 때 클롭은 "We are Liverpool"이라는 응원구호를 외쳤고, 모든 사람들이 따라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선수들의 친구가 되었지만, 절대 베프는 되지 않았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크리스찬 벤테케가 이 묘사를 처음 사용한 선수였고 6개월 뒤 팀을 떠났다. 마마두 사코 역시 클롭과의 관계를 비슷하게 얘기했었다. 그리고 2016-17시즌 팀을 떠났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비록 사코는 드레싱 룸에서 존경받는 선수였고, 클롭도 사코를 선수로서 좋아했다. 하지만 클롭은 규율을 더 중요시했다. 사코는 프리시즌 미국 투어 비행시간에 늦었는데, 이게 사코의 첫번째 경솔한 행동이 아니었다. 사코는 UEFA의 약물 규정을 위반했고, 이 때문에 세비야와의 유로파리그 결승전에 출장할 수 없었다. 이후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클롭은 구단 모르게 다이어트 보조제를 섭취한 사코의 행동에 분노했다. 클롭은 베테랑 선수들이 모범을 보여주길 원했는데, 일련의 행동 때문에 사코는 리버풀 소속으로 다시 출장하지 못했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크리스탈 팰리스로 떠났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 당시에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핵심 선수들의 영입이 그 해 여름에 있었다. 사디오 마네, 조엘 마팁, 조르지뉴 바이날둠 등이 모두 3년 안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할 선수가 되었다. 이들은 각각 사우스햄튼, 샬케, 강등된 뉴캐슬에서 왔다. 셋 중에 마네는 클롭의 첫번째 풀 시즌에 가장 중요한 선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마네의 골 덕분에 리버풀이 다시 챔피언스 리그로 복귀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클롭은 도르트문트에 있었을 때 마네와의 계약을 시도했다. 둘은 독일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 때 마네는 더 어렸고 조용했다. 그래서 클롭은 마네가 도르트문트에서 뛸만한 성격인지 의구심을 가졌다. 여튼 클롭은 같은 실수를 두 번하지 않았다. 그 당시 마네는 토튼햄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과도 만났지만, 리버풀의 미래에 대한 클롭의 열정을 보고 안필드행을 결심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반면 코칭스태프진은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영양사 모나 네머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합류했고, 네머의 첫번째 결정은 멜우드 1군 드레싱룸에 주스 자판기를 갖다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바로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다. 하프 타임때 설탕이 포함된 음료를 마시는 것 대신, 카페인이 들어있는 사과 주스를 마시기 시작했다. 체력 훈련을 담당하는 안드레아 콘마이어는 클롭이 군대 훈련조교로 묘사한 인물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이 원했지만, 영입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초점이 맞춰졌다. 클롭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괴체를 영입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괴체가 유로 2016 이후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얘기하면서 클롭의 관심은 식었다. 레스터의 10대 소년, 벤 칠웰의 영입도 실패했다. 그 때문에 클롭은 한 시즌동안 제임스 밀너를 레프트백으로 써야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다른 클럽의 움직임 덕분에 리버풀에 가해지는 압박도 더 거세졌다. 클롭은 라이벌 구단들의 거대한 지출을 비웃었는데, 2015-16시즌 리버풀보다 더 좋은 리그 성적을 거둔 두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 대상이었다. 2017년과 2018년 버질 반 다이크, 알리송 베커 등을 영입하면서 입장이 바뀌겠지만, 그 당시에 클롭은 "전 좀 다르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하지만 클롭은 리버풀이 지난 7시즌 동안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단 한 번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액 계약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18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과 같은 성취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알리송 영입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지만, 2018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 6개월 전에 쿠티뉴가 £140M로 바르셀로나 이적을 하지 않았더라면 반 다이크 영입전에서 맨체스터 시티와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제라르 훌리에 이후, 처음으로 보드진과 현장 사이에 명확한 업무분담이 생겼다. 클롭이 원하던 타겟을 놓쳤을 때, 구단 내부에서는 라파 베니테즈, 브랜던 로저스 시절 겪었던 마찰이 재현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메사추세츠州에 기반을 둔 FSG와 클롭 사이에 어마어마한 물리적인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든과 클롭은 매일같이 연락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무슨 사안이든지 심각해지기 전에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 클롭이 2018년 보스턴을 처음 방문했을 때, 미네소타 트윈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 관람을 위해 헨리, 워너, 고든을 만났다. 그 해 여름 클롭이 이비자에서 휴가를 보낼 때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쓴 사진이 찍힌 적이 있었다. 그래서 헨리의 와이프 린다는 클롭을 구단 샵으로 데려가서 클롭이 적절한 옷을 입고 있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前 CEO인 이안 에어가 코시케와 접촉한 적이 있긴 하지만, 2015년 가을 보드진 가운데 처음으로 클롭과 직접 통화한 사람은 고든이었다. 계약서가 오고 가는 시점에 고든은 클롭에게 축하의 문자를 보냈고, 클롭의 대답은 “Woooohoooo!” 였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전임 로저스는 개인적인 호불호와 상관없이 FSG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고든은 클롭이 의견 차이를 두고 건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만큼 서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지를 가장 궁금해 했다. "속에 있는 생각을 말하고 동의하지 않는 것은 허락되지 않아요." 고든이 클롭에게 얘기했다. 클롭은 잠시 멈춰서 눈썹을 치켜 세우더니, "그건 필요하죠"라고 답했다. 그 다음 고든은 클롭에게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바로 좋은 아이디어가 구체화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특히 각자가 솔직한 얘기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신뢰 부족이 원인일 때가 더욱 그러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1d7e6dc21fa4f37ad784dbfd8dd37778.jpg" alt="그림7.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468"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부임 8개월만에 클롭은 고든과 더 향상된 새로운 계약에 서명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비록 클롭이 컨버스 트레이너와 청바지를 즐겨 입고, 고든은 좀 더 머리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문제 접근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클롭은 축구 감독을 하며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고, 고든은 성실함으로 구단 내부에서 유명하다. 보스턴에서는 오전 6시부터 업무를 시작하고, 보통 1시간마다 리버풀에 있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한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사람치고는 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해 구단에 있는 누구와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는 그 문제가 실무진에서는 다뤄지지 않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이 리버풀에 재임하는 동안, '이걸 하지 않으면, 우린 그걸 할 수 없어'와 같은 영향력이 항상 같은 방식으로 발현된 것은 아니다. 클롭 밑에서 달라진 것은 누군가의 의견을 경청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토론의 수준이다. 예를 들어, 헨리는 모하메드 살라에게 £40M을 투자하는 것이 과소비라고 생각했다. 이미 첼시에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버풀은 에드워즈 디렉터의 추천으로 살라를 AS 로마에서 영입했다. 사실 클롭은 살라보다 레버쿠젠의 율리안 브란트를 원했다. 하지만 클롭과 고든은 모두 에드워즈의 의견을 따랐다. 클롭과 고든은 바젤에서부터 살라가 보여준 성장세를 감안해서 살라 영입에 찬성했다고 알려졌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이런 점에서 리버풀의 변화는 바로 체감되었다. 라파 베니테즈 이후, 이적과 관련해서 리버풀 내부에서는 각 파트의 책임과 효율성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이 있었다. 클롭이 에드워즈, 영입 책임자 데이비드 팔로우스, 수석 스카우트 배리 헌터 등에게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아닌, 공개적인 칭찬을 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5537989fe110203bd6e84c194748e15f.jpg" alt="그림8.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524"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쿠티뉴 이적과 관련해서도 처음에는 이견이 있었다. 클롭의 첫번째 풀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 여부는 리그 마지막 날에 결정됐다. 쿠티뉴는 팀의 핵심 선수였고 이미 1월에 새로운 계약으로 그 사실은 입증되었다. 하지만 8개월 후, 바르셀로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FSG는 쿠티뉴를 내보내는 것이 항복처럼 느껴졌다. 리버풀은 더 발전될 것이지만, 빠른 시일내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선수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안필드에서는 이룰 수 없다는 선언 같았다. 이로 인해 헨리는 쿠티뉴를 여름 이적시장에서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검진 결과 아무런 부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쿠티뉴가 갑자기 등이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게 했다. 클롭은 쿠티뉴와의 대화를 통해 쿠티뉴가 얼마나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싶어하는지 알게 됐다. 클롭은 드레싱 룸에서 쿠티뉴를 보고 마음이 떠났음을 알았다. 2017-18시즌 개막전이 시작되기 전에 쿠티뉴는 이적 요청서를 제출했다. 구단 차원에서 쿠티뉴가 잔류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지 몇 시간만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쿠티뉴에 화가 났고, 고든에게 연락해 자신과 구단을 믿지 않는 선수와는 일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클롭은 '이제 쿠티뉴를 팔아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고, 이 메세지는 헨리에게 전달되었다. 그럼에도 헨리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는 클롭과 함께 일하는 것이 리버풀을 위해 더 나은 것이라고 믿게 했고, 팀으로서의 발전도 뒤로 밀리지 않게 해주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 후, 며칠동안 쿠티뉴의 이적 계획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쿠티뉴는 겨울 이적시장까지 팀에 잔류했다. 쿠티뉴의 경기력이 돌아오면서 이적료는 더 불어났다. 그와 동시에 알렉스 옥슬레이드-쳄벌레인에 대한 스카우트도 더 자세해졌다. 1월에 쿠티뉴를 이적시킬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i><span style="font-family:Arial;">너무 길어서 2부에서 계속...</span></i></div><div><br></div><div style="text-align:right;"><span style="font-family:Arial;">제임스 피어스/사이먼 휴즈</span></div><div style="text-align:right;"><span style="font-family:Arial;">
https://theathletic.com/1890402/2020/06/26/liverpool-jurgen-klopp-premier-league-champions/</span></div></div><div></div> <div style="float: left; height: 1px overflow: hidden;"><br><br>코인월드 <a href="https://www.worldbtcoin.com/" target="_blank" title="코인월드">코인월드</a><br>
코인 월드 <a href="https://www.worldbtcoin.com/" target="_blank" title="코인 월드">코인 월드</a><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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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 | 제작년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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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명 |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 지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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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 0RYMS354 | | |
<div id="pi__32496278_3483273" class="pi__32496278_3483273"><span style="font-family:Arial;">프랑크푸르트 교외에서의 미팅이 없었다면, 10년 후 리버풀과의 만남은 없었을지 모른다.</span></div><div><br id="pi__32496278_3483273" class="pi__32496278_3483273"></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당시 클롭은 블랙 포레스트 출신의 감독이었고 38세였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감독은 아니었다. 반면 마르크 코시케는 브레멘에서 태어났고 나이키의 옛 독일 본사에서 일하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2005년까지 약 4년 동안 마인츠를 맡았고, 이 때문에 클럽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개인 후원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코시케는 나이키에 오랫동안 몸담았고, 클롭이 터치라인을 배회할 때 나이키의 신발을 신을만한 인물인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마인츠는 차로 40분 거리에 있었고, 클롭은 친구이자 항상 계약시 동행했던 변호사와 함께 나타났다. 클롭은 자신이 에이전트를 둘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서 에이전트가 없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책상은 서로 떨어져 있었고, 코시케는 가죽의자에 몸을 기대고 두 팔을 머리에 얹은 채 있었다. 클롭은 청바지와 후드티를 입고 왔는데, 축구 감독처럼 보이진 않았다. 마인츠는 분데스리가 클럽이었고, 2004-05시즌 11위로 리그를 마쳤지만 페어플레이 기록으로 UEFA컵 출전권을 얻은 상태였다. 코시케가 바라보는 클롭은 커다란 손동작과 유려한 말솜씨를 자랑함에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span></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3772923a2ad5fe43a6999b4a2027493f.jpg" alt="그림1.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3703"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다음 미팅 일정이 잡혔다. 이번에는 교외의 술집이었다. 코시케는 클롭이 마음에 들었지만 좀 더 알고 싶은 점이 있었다. 클롭은 밀맥주를 주문했고, 코시케도 밀맥주를 주문했다. 오후가 저녁으로 바뀌었고, 밀맥주는 계속 나왔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이 화장실을 다녀왔고, 코시케는 클롭이 들어가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전 돈은 신경쓰지 않아요." 클롭이 얘기했다. "하지만 내 변호사 친구는..." 클롭은 이렇게 설명했다. 녹슨 바지선을 사서 다시 가치가 있는 배로 만드는 과정에 있다고. 그 과정에 필요한 돈이 약 €12K (현재 기준 1,600만원) 라고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거래하죠. 그럼 제 친구가 배를 가질 수 있어요." 클롭이 제안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코시케는 웃으면서 좋은 생각인거 같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코시케는 클롭과 함께 했다. 코시케는 여태까지 나이키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여러 고객들과 클롭은 달랐다고 생각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2015년 가을, 클롭과 코시케는 뮌헨 공항에 있는 루프트한자 라운지에서 쉬고 있었다.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나름 가렸지만, 한 승무원이 클롭을 알아봤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왜 클롭은 뉴욕행 비행기를 탔을까?'</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프랑크푸르트에서 클롭과 코시케가 처음 만난 이후, 10년이 지났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2006년 무렵, 클롭의 업무는 늘어나기 시작했고 루틴한 업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마인츠는 세간의 예상보다 더 잘하고 있었고, 그 해 여름 독일 월드컵에서 TV 해설가로 참가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떨쳤다. 코시케는 클롭이 주저하지 않고 전술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클롭은 성격 덕분에 사람들에게 핵심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당시 코시케는 나이키를 떠나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선수들의 에이전트를 생각했다. 그러다 한 행사장에서 클롭을 만났고, 클롭은 단도직입적으로 코시케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제 에이전트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첫번째 빅 딜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였다. 독일에서 두번째로 큰 클럽이었던 도르트문트를 맡아 리그 우승 2회, 독일 컵 우승 1회, 독일 슈퍼컵 우승 1회 등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도 이끌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b24e993a9d4782231d54cbf92f8f0370.jpg" alt="그림2.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3899"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2015년 여름, 클롭은 공식적으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도르트문트에서 성공적인 7시즌을 보내고 난 뒤였다. 하지만 코시케는 계속 일하고 있었다. 감독직으로 돌아올 때를 준비했다. 클롭이 어떤 지침을 내려주지는 않았지만, 코시케는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몰두했다. 전화를 걸고, 받았으며 신뢰할 수 있는 통로를 통해 클롭이 맡을 수도 있는 클럽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후보 중 하나는 첼시였다. 다른 하나는 리버풀이었다. 코시케는 구단주와 보드진의 구조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마이클 에드워즈가 정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에드워즈는 공식적으로 디렉터 직함을 달진 않았다. 하지만 코시케는 에드워즈가 직함만 없을 뿐, 디렉터의 업무를 모두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안 에어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다. 코시케는 리버풀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클롭에게 첫번째로 연락이 올거라고 예상했다. 코시케가 에어에 대해서 수집한 정보는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았다. CEO로 재임하는 동안 진행했던 대부분의 영입/거래 등이 성공적이지 않았다. 여튼 에어가 정말 어땠다는거지?</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코시케에게 전달된 모든 정보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코시케와 클롭은 스스로 판단하길 원했다. 특히 리버풀의 실패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클롭을 위한 면접 자리였지만, 클롭과 코시케가 자신을 고용할 사람들을 판단하는 면접 자리이기도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 날의 또 다른 전략은 미팅 장소가 맨하탄이었다는 것이다. 뮌헨 공항에서 한 승무원이 클롭을 알아봤을 때, 클롭은 농구 경기를 보러 뉴욕에 간다고 했다. 하지만 NBA 개막은 한 달도 더 남은 상태였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펜웨이 스포츠 그룹 (이하 FSG)의 마이크 고든이 미팅 장소로 보스턴과 거리가 있는 곳을 추천한 것은 행운이었다. 고든은 클롭이 보스턴에서 발견될 경우, 그 이유가 너무나도 명확해지기 때문에 다른 장소를 추천했다. 코시케는 고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진 못했다. 2015년까지 고든은 보스턴 외곽의 브룩라인에 머물면서 리버풀의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과 고든은 슈투트가르트 근처의 글라텐과 미네소타에서 각각 어린 시절을 보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둘 다 오픈 마인드라는 사실은 금방 알아차렸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클롭의 성격이 강하다는 선입견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이는 클롭이 항상 다른 사람의 말을 먼저 듣고 나서 자기 얘기를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고든은 173cm, 클롭은 거의 193cm였다. 고든은 조용하게 얘기하고 스스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불편해 했다. 하지만 클롭은 정반대였다. 고든은 클롭에게 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클롭은 리버풀에게 감명 받았다고 얘기했지만, 구단주들을 앞에 두고 리버풀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할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그동안 리버풀에 너무 많은 부상자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감독이 된다면, 이 점을 가장 먼저 바꿀 것이라고 했다. 미팅이 끝나갈 무렵, 고든은 존 헨리에게 클롭은 어떤 기업에 가서도 CEO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했다. 축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클롭은 대서양 반대편에서 FSG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카를로 안첼로티는 클롭보다 하루 앞서서 로펌 '쉬어맨 & 스털링'을 방문했다. 고든은 안첼로티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리버풀에 더 필요한 감독은 클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3년 전만 하더라도 FSG는 브랜던 로저스에게 감독직을 맡기기 위해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클롭은 달랐다. 클롭의 열정은 로저스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지난했던 논쟁이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코시케가 계약 조건을 합의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클롭은 코시케가 세부 계약사항을 조율할 때 즈음, 미팅 장소를 떠나 센트럴 파크로 갔다. 스트로베리 필드를 가로질러 존 레논이 살았던 다코타 빌딩을 향해 걸어갔다. 리버풀로 간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65e4a2a5221b722ef7f7f752f89c89bc.jpg" alt="그림3.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055"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리버풀 아카데미 식당에는 커피머신이 있었다. 그리고 클롭은 커크비 지역에서 보내는 첫번째 오후를 아카데미에서 머물렀다. 쌀쌀한 10월이었고 훈련장에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알렉스 잉글소프를 비롯해 아카데미 코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을 찍은 후, 클롭은 직접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에스프레소와 담배는 클롭이 일상적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방법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사람들은 클롭이 커피 머신을 조작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뭔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클롭이 얘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새로운 커피머신이 있어야 겠네요!" 이제는 익숙하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던 웃음을 보이면서 클롭이 얘기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아카데미를 정기적으로 찾지 않는다. 클롭은 그 날 아카데미에 있는 사람들이 잘하고 있다는 말로 모두를 안심시켰다. 클롭은 도르트문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카데미에 있는 선수 중 몇몇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잉글소프에게 아카데미 운영의 전권을 주겠다고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다음 번 아카데미를 방문했을 때, 클롭은 기뻐했다. 새로운 커피머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제 얘기를 듣고 있었네요!" 몇 달 후, 클롭은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가 1군 훈련장인 멜우드에서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음에도 말이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예전에 클롭은 독일의 오펠 공장에서 만 여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클롭의 강연은 거의 콘서트에 가까웠고, 강연이 끝나갈 무렵에는 청중들이 클롭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클롭은 첫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모든 관계의 기본이라고 보고 있다. 멜우드의 회의실에서 첫번째 선수단 미팅을 했을 때, 클롭은 화이트보드에 대문자로 'TERRIBLE'이라고 썼다. 클롭은 안필드에서 리버풀을 상대한 팀들이 느껴야 하는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그 감정은 내가 공을 빼앗겼을 때, 더 멀리 뛰고 더 빠르게 상대를 압박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거기서부터 리버풀의 역습이 시작되는 것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리고 클롭은 모든 스태프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했다. 선수단 앞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얘기하라고도 했다. 이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진행됐다. 선수들은 훈련장에 일하는 모든 직원들의 이름을 알아야 했다. 클롭은 성공을 위해서는 협업이 필요하고, 협업을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선수단의 재능에 대해 칭찬했지만, 리버풀의 감독으로 결정된 이후 지난 1년간의 모든 리버풀 경기를 시청했다. 그리고 클롭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감의 결여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휴식시간을 줄이기로 결정했고, 불과 하루만에 훈련 강도는 더 높아졌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감독 초기에 클롭은 리버풀의 트레이닝복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원단이 땀을 잘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클롭은 선수들이 연습도 실전처럼 생각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트레이닝복이 문제가 됐던 것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4부리그 팀이었던 칼라일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컵 홈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페널티킥까지 가야했던 상황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훈련장에서는 베테랑들끼리 얘기했고 상황은 계속 반복되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당분간은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리버풀이 나아졌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전년도 우승팀인 첼시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2014-15시즌 2위를 차지한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제서야 클롭의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6eeb0aa49720053655f6d2f2735435de.jpg" alt="그림4.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159"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기다려준다거나 방법을 바꾸는 것은 없었다. 클롭은 선수들을 편안하게 내버려두거나 기존 코치들이 혼자서 훈련 세션을 진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클롭은 한발짝 뒤에서 지켜보고 판단을 내렸다. 대신 시작부터 호불호는 명확했다. 첫 경기였던 토튼햄과의 원정경기에서부터 잘 알 수 있었는데, 이 경기에서 아담 랄라나는 미드필드전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클롭은 훈련장에서 랄라나가 보여준 포지셔닝에 대한 이해와 활동량에 매료되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초기에 클롭의 눈에 띄었던 다른 선수가 있다면, 바로 다니엘 스터리지였다. 클롭은 리버풀 선수단이 재능있는 선수들로 구성됐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스터리지는 생각보다 더 좋은 선수라고 했다. 도르트문트 시절 지도했던 레반도프스키와 마리오 괴체를 합치면 스터리지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클롭은 스터리지가 부상이 없었을 때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는데, 그랬다면 유럽 최고 9번은 스터리지의 자리라고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코치들은 1일차 아침부터 멜우드 훈련장을 세 구역으로 나눠서 압박 훈련을 준비했다. 이것은 클롭이 이뤄낸 모든 것들의 기본이지만, 당시 선수들은 몇몇 훈련이 생소한 것이었다고 했다. 선수들은 서로 같은 거리에 마네킹을 놓았고, 각각의 마네킹은 압박의 강도를 나타내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거의 모든 경기를 앞두고 클롭은 "압박 피해자"를 선정했다. 대개 공을 투박하게 다루는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타겟이 됐다. 클롭의 목표는 리버풀 선수들이 압박해서 공을 빼앗기 전에 "압박 피해자"에게 공이 가도록 하는 것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선수단에게 "공을 빼앗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은 소유권을 잃은 직후다"라고 얘기했다. "상대방은 공을 패스할 곳을 찾고 있을 것이고 압박을 가하면 태클을 피하거나 공을 지키기 위해 급급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체력 소모가 일어난다"고 덧붙였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초창기 클롭은 정기적으로 훈련을 중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선수단에게 직접 이야기 했다. 클롭은 자신의 전술이 상대팀에게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사실 그 전술은 리버풀에게도 리스크가 컸다. 클롭은 3~4명의 선수가 상대방을 압박하며 공간을 좁히라고 주문했는데, 이 때 다른 선수들이 적절한 위치로 로테이션하지 않는다면 다른 공간이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이 약점은 2015년 12월 20일 왓포드를 상대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날 리버풀은 왓포드에 0-3으로 패했다. 선수단은 그 날 밤, 폼비 홀 골프 클럽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기에서 패한 후, 선수단은 크리스마스 파티가 취소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리버풀에 도착한 이후, 클롭은 선수단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하든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고 오늘 밤은 그게 크리스마스 파티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새벽 1시까지는 아무도 집에 못 간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또 다른 밤, 리버풀은 다시 패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의 리버풀 데뷔 시즌은 바젤에서 끝났다. 유로파 리그 결승에서 전반이 끝났을 때, 리버풀은 세비야를 1-0으로 이기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에 보여준 세비야의 경기력은 리버풀을 압도했고, 세비야는 1-3 이상으로 리버풀을 이길 수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당시 리버풀의 숙소였던 노보텔 내부의 분위기는 절망적이었다. 심지어 클롭조차 이 패배로 무너졌다. 클롭은 다른 코치들과의 미팅에서 세비야가 더 강하고, 조직력이 조 ㅎ았음을 인정했다. 클롭은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했지만, 당시의 선수단 구성이 자기가 원하는 선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리버풀의 현 전력으로 유로파 리그 결승까지 온 것이 대단한 일이라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1cc77cc9b3ac149e334ad59af81a8539.jpg" alt="그림5.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287"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의 리버풀 첫번째 시즌은 출발점때문에 '성공적인 실패'로 느껴졌다. 기대 자체가 거의 없었고 클럽 전반적으로 리빌딩 작업을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리빌딩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실망스러운 결과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 리버풀의 리그 순위는 8위였는데, 이는 지난 20년간 최악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사람들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클롭이 리버풀에 왔을 때 리그 순위가 10위였기 때문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비록 클롭이 두 구단 사이의 재능의 차이로 인해 더 납득하기 쉬웠다고 해도,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컵 결승에서 페널티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배한 것도 이 과정의 일부였다. 바젤에서 일어난 일은 클롭에게 안필드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의 규모를 다시 깨우쳐 주었다. 그리고 이 패배는 2016-17시즌 리버풀에 유럽 대항전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아직도 선수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선수단에게 유로파 리그가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도 리버풀이 결승에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2시간 전에, 우리 모두 최악이었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클롭은 이것이 시작이라고 했고, 다른 결승전이 있을거라고 했다. 이 감정을 기억하고 실망감을 이용해서 더 발전해야 한다고도 했다. 클롭은 선수들에게 자신의 말을 경청해줘서,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수용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그 시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리버풀 서포터들이 다시 클럽을 신뢰하길 원했다. 관중석으로부터의 열정을 이용할 수 있다면, 12번째 선수에 대한 이론이 입증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만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의 부임 후, 두번째로 열렸던 홈경기인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경기 종료 8분을 남기고 크리스탈 팰리스가 앞서나가자 팬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클롭은 그 날을 회상하며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웨스트 브롬위치와의 홈경기에서 2-2로 비겼을 때는 달라졌다. 리버풀의 동점골은 경기 막판에 터졌고, 그 때까지 관중석은 꽉 차 있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0827540ea0074bfd0f6acb6231a7b62e.jpg" alt="그림6.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377"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시즌이 끝날 무렵, 분위기는 완전히 변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유로파 리그에서 도르트문트를 4-3으로 이겨, 종합 5-4로 승리한 것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 경기 종료 25분을 남기고 있었을 때까지 리버풀은 1-3으로 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승리했고, 이는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던 안필드의 리버풀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클롭은 바젤에서 이 날 경기를 "리버풀 팬들이 내 축구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30분을 만들어냈다"고 회상했다. "우리가 함께 여기까지 왔다"고.</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 때 클롭은 "We are Liverpool"이라는 응원구호를 외쳤고, 모든 사람들이 따라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선수들의 친구가 되었지만, 절대 베프는 되지 않았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크리스찬 벤테케가 이 묘사를 처음 사용한 선수였고 6개월 뒤 팀을 떠났다. 마마두 사코 역시 클롭과의 관계를 비슷하게 얘기했었다. 그리고 2016-17시즌 팀을 떠났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비록 사코는 드레싱 룸에서 존경받는 선수였고, 클롭도 사코를 선수로서 좋아했다. 하지만 클롭은 규율을 더 중요시했다. 사코는 프리시즌 미국 투어 비행시간에 늦었는데, 이게 사코의 첫번째 경솔한 행동이 아니었다. 사코는 UEFA의 약물 규정을 위반했고, 이 때문에 세비야와의 유로파리그 결승전에 출장할 수 없었다. 이후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클롭은 구단 모르게 다이어트 보조제를 섭취한 사코의 행동에 분노했다. 클롭은 베테랑 선수들이 모범을 보여주길 원했는데, 일련의 행동 때문에 사코는 리버풀 소속으로 다시 출장하지 못했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크리스탈 팰리스로 떠났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 당시에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핵심 선수들의 영입이 그 해 여름에 있었다. 사디오 마네, 조엘 마팁, 조르지뉴 바이날둠 등이 모두 3년 안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할 선수가 되었다. 이들은 각각 사우스햄튼, 샬케, 강등된 뉴캐슬에서 왔다. 셋 중에 마네는 클롭의 첫번째 풀 시즌에 가장 중요한 선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마네의 골 덕분에 리버풀이 다시 챔피언스 리그로 복귀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클롭은 도르트문트에 있었을 때 마네와의 계약을 시도했다. 둘은 독일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 때 마네는 더 어렸고 조용했다. 그래서 클롭은 마네가 도르트문트에서 뛸만한 성격인지 의구심을 가졌다. 여튼 클롭은 같은 실수를 두 번하지 않았다. 그 당시 마네는 토튼햄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과도 만났지만, 리버풀의 미래에 대한 클롭의 열정을 보고 안필드행을 결심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반면 코칭스태프진은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영양사 모나 네머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합류했고, 네머의 첫번째 결정은 멜우드 1군 드레싱룸에 주스 자판기를 갖다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바로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다. 하프 타임때 설탕이 포함된 음료를 마시는 것 대신, 카페인이 들어있는 사과 주스를 마시기 시작했다. 체력 훈련을 담당하는 안드레아 콘마이어는 클롭이 군대 훈련조교로 묘사한 인물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이 원했지만, 영입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초점이 맞춰졌다. 클롭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괴체를 영입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괴체가 유로 2016 이후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얘기하면서 클롭의 관심은 식었다. 레스터의 10대 소년, 벤 칠웰의 영입도 실패했다. 그 때문에 클롭은 한 시즌동안 제임스 밀너를 레프트백으로 써야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다른 클럽의 움직임 덕분에 리버풀에 가해지는 압박도 더 거세졌다. 클롭은 라이벌 구단들의 거대한 지출을 비웃었는데, 2015-16시즌 리버풀보다 더 좋은 리그 성적을 거둔 두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 대상이었다. 2017년과 2018년 버질 반 다이크, 알리송 베커 등을 영입하면서 입장이 바뀌겠지만, 그 당시에 클롭은 "전 좀 다르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하지만 클롭은 리버풀이 지난 7시즌 동안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단 한 번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액 계약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18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과 같은 성취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알리송 영입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지만, 2018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 6개월 전에 쿠티뉴가 £140M로 바르셀로나 이적을 하지 않았더라면 반 다이크 영입전에서 맨체스터 시티와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제라르 훌리에 이후, 처음으로 보드진과 현장 사이에 명확한 업무분담이 생겼다. 클롭이 원하던 타겟을 놓쳤을 때, 구단 내부에서는 라파 베니테즈, 브랜던 로저스 시절 겪었던 마찰이 재현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메사추세츠州에 기반을 둔 FSG와 클롭 사이에 어마어마한 물리적인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든과 클롭은 매일같이 연락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무슨 사안이든지 심각해지기 전에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 클롭이 2018년 보스턴을 처음 방문했을 때, 미네소타 트윈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 관람을 위해 헨리, 워너, 고든을 만났다. 그 해 여름 클롭이 이비자에서 휴가를 보낼 때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쓴 사진이 찍힌 적이 있었다. 그래서 헨리의 와이프 린다는 클롭을 구단 샵으로 데려가서 클롭이 적절한 옷을 입고 있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前 CEO인 이안 에어가 코시케와 접촉한 적이 있긴 하지만, 2015년 가을 보드진 가운데 처음으로 클롭과 직접 통화한 사람은 고든이었다. 계약서가 오고 가는 시점에 고든은 클롭에게 축하의 문자를 보냈고, 클롭의 대답은 “Woooohoooo!” 였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전임 로저스는 개인적인 호불호와 상관없이 FSG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고든은 클롭이 의견 차이를 두고 건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만큼 서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지를 가장 궁금해 했다. "속에 있는 생각을 말하고 동의하지 않는 것은 허락되지 않아요." 고든이 클롭에게 얘기했다. 클롭은 잠시 멈춰서 눈썹을 치켜 세우더니, "그건 필요하죠"라고 답했다. 그 다음 고든은 클롭에게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바로 좋은 아이디어가 구체화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특히 각자가 솔직한 얘기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신뢰 부족이 원인일 때가 더욱 그러했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1d7e6dc21fa4f37ad784dbfd8dd37778.jpg" alt="그림7.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468"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부임 8개월만에 클롭은 고든과 더 향상된 새로운 계약에 서명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비록 클롭이 컨버스 트레이너와 청바지를 즐겨 입고, 고든은 좀 더 머리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문제 접근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클롭은 축구 감독을 하며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고, 고든은 성실함으로 구단 내부에서 유명하다. 보스턴에서는 오전 6시부터 업무를 시작하고, 보통 1시간마다 리버풀에 있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한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사람치고는 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해 구단에 있는 누구와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는 그 문제가 실무진에서는 다뤄지지 않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이 리버풀에 재임하는 동안, '이걸 하지 않으면, 우린 그걸 할 수 없어'와 같은 영향력이 항상 같은 방식으로 발현된 것은 아니다. 클롭 밑에서 달라진 것은 누군가의 의견을 경청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토론의 수준이다. 예를 들어, 헨리는 모하메드 살라에게 £40M을 투자하는 것이 과소비라고 생각했다. 이미 첼시에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버풀은 에드워즈 디렉터의 추천으로 살라를 AS 로마에서 영입했다. 사실 클롭은 살라보다 레버쿠젠의 율리안 브란트를 원했다. 하지만 클롭과 고든은 모두 에드워즈의 의견을 따랐다. 클롭과 고든은 바젤에서부터 살라가 보여준 성장세를 감안해서 살라 영입에 찬성했다고 알려졌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이런 점에서 리버풀의 변화는 바로 체감되었다. 라파 베니테즈 이후, 이적과 관련해서 리버풀 내부에서는 각 파트의 책임과 효율성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이 있었다. 클롭이 에드워즈, 영입 책임자 데이비드 팔로우스, 수석 스카우트 배리 헌터 등에게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아닌, 공개적인 칭찬을 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span></div></div><div><br></div><div><br></div><div><img src="//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data-original="//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628/340354/68193/2965493698/5537989fe110203bd6e84c194748e15f.jpg" alt="그림8.jpg [The Athletic] 꿈을 현실로 만든 위르겐 클롭, 첫번째 이야기" data-file-srl="2965494524" title=""><br><br><br></div><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쿠티뉴 이적과 관련해서도 처음에는 이견이 있었다. 클롭의 첫번째 풀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 여부는 리그 마지막 날에 결정됐다. 쿠티뉴는 팀의 핵심 선수였고 이미 1월에 새로운 계약으로 그 사실은 입증되었다. 하지만 8개월 후, 바르셀로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FSG는 쿠티뉴를 내보내는 것이 항복처럼 느껴졌다. 리버풀은 더 발전될 것이지만, 빠른 시일내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선수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안필드에서는 이룰 수 없다는 선언 같았다. 이로 인해 헨리는 쿠티뉴를 여름 이적시장에서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검진 결과 아무런 부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쿠티뉴가 갑자기 등이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게 했다. 클롭은 쿠티뉴와의 대화를 통해 쿠티뉴가 얼마나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싶어하는지 알게 됐다. 클롭은 드레싱 룸에서 쿠티뉴를 보고 마음이 떠났음을 알았다. 2017-18시즌 개막전이 시작되기 전에 쿠티뉴는 이적 요청서를 제출했다. 구단 차원에서 쿠티뉴가 잔류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지 몇 시간만이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클롭은 쿠티뉴에 화가 났고, 고든에게 연락해 자신과 구단을 믿지 않는 선수와는 일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클롭은 '이제 쿠티뉴를 팔아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고, 이 메세지는 헨리에게 전달되었다. 그럼에도 헨리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는 클롭과 함께 일하는 것이 리버풀을 위해 더 나은 것이라고 믿게 했고, 팀으로서의 발전도 뒤로 밀리지 않게 해주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Arial;">그 후, 며칠동안 쿠티뉴의 이적 계획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쿠티뉴는 겨울 이적시장까지 팀에 잔류했다. 쿠티뉴의 경기력이 돌아오면서 이적료는 더 불어났다. 그와 동시에 알렉스 옥슬레이드-쳄벌레인에 대한 스카우트도 더 자세해졌다. 1월에 쿠티뉴를 이적시킬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span></div><div><br></div><div><br></div><div><i><span style="font-family:Arial;">너무 길어서 2부에서 계속...</span></i></div><div><br></div><div style="text-align:right;"><span style="font-family:Arial;">제임스 피어스/사이먼 휴즈</span></div><div style="text-align:right;"><span style="font-family:Arial;">
https://theathletic.com/1890402/2020/06/26/liverpool-jurgen-klopp-premier-league-champions/</span></div></div><div></div> <div style="float: left; height: 1px overflow: hidden;"><br><br>코인월드 <a href="https://www.worldbtcoin.com/" target="_blank" title="코인월드">코인월드</a><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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